그렇게 '사법피해자'라고 외치고 싶은가
1. 들어가며
그냥 생각을 읊조려본 글인데 이오공감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습니다. 몇몇 분들이 질문을 개별적으로 해 드린 것에 제가 아는 한에서는 최대한 답변을 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지식이 부족한지라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 몇몇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운 바입니다. 원래 썼던 저 글의 의도와 정확한 취지를 보이기에는 저 글을 썼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정리되지 못한 몇몇 내용들이 있습니다. 제 신분상 꾸준히 답글을 달고 할 처지가 되지는 못해서, 간단하게 요약해보려고 합니다.
(트랙백을 보냈던 분이 어려운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뭐라 하길래, 이번 얘기는 법률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한 어려운 법률용어는 쉽게 풀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2. 원래 글을 썼던 의도는?
어떤 비로그인 덧글을 포함한 몇몇 덧글에서 제가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려 한다, 변명을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그렇습니까? 다시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재판부가 잘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왜 피고인 김명호와 변호인 박훈은 정리되지 않은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이 사법권력의 희생양인 양' 포장하려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고, 그들의 주장 중에 몇 가지 문제가 있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핵심은 '여론몰이 재판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는 것이었죠.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짤막하게 얘기해보겠습니다.
해석은 갈릴 수 있습니다. 덧글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트랙백을 보냈던 글에서 퍼왔던 글도 순전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Fact와 Truth는 구분되어야 하겠죠. 어떤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건의 재판부가 쳐죽일 놈들인 것 같고, 어떤 입장에서 보면 피고인측이 어거지를 부리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쓴 이유는 그것에 대한 해석이 앞의 것으로 기울어지는 것만 같아서, 그 반대의 면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여론몰이'가 잘못인가?
적어도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론몰이는 재판에 대한 바깥에서의 압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고, 재판에 있어서 외부의 압력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1)
민사소송이든, 형사소송이든, 판사의 판단은 '자유심증주의'라는 원칙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판사가 사실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를 논리칙과 경험칙에 따라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민사소송법 제202조는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말하며, 형사소송법 제308조도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하여 '자유심증주의'라는 제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 증거가 있을 때 A,B,C중 A,B만을 선택하고 C는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법은 이런 자유심증주의를 택하고 있을까요? 법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래 저 자유심증주의가 채택되기 전에는 이른바 '법정증거주의'라는 원칙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법률로 규정된 것만을 증거로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법에 규정된 것은 반드시 증거로 해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정증거주의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형사소송에서 이른바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하여 피고인이 사실을 자백하면 아무런 다른 증거 없이 그것만으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고문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또한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을 놓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법에 규정된 증거인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이없는 재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근대에 들어와서 모든 나라는 자유심증주의를 택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고요. 하지만 이 원칙은 역시 '판사 마음대로 할 우려'가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제한을 둡니다. 그것이 '논리칙'과 '경험칙'입니다. 논리칙이라 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경험칙이라 함은 일반인의 상식에 의하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물이 아무 동력도 없이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한다든가, 개에게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진실이라고 한다든가 하면 여기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2)
저 김명호씨 사건에서 사람들은 재판부의 판단이 명백히 자의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일에 대해서 누구도 그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범인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실제로 많이 일어납니다. 마약을 했다든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든가 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죠. 이 사건에서도 그렇습니다. 피해자 박홍우가 자해를 했는지, 아니면 피고인 김명호가 박홍우를 쏘았는지, 그 때는 둘 밖에 없었습니다. 둘 밖에 모르고, 아무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CCTV는 없다고 합니다.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 화면도 조작될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판사의 판결은 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냐? 어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판사는 여러 가지 증거(여기에는 압수한 물건과 같은 물증과, 증언과 같은 인증이 있습니다)를 놓고, 자유롭게 선택을 하여 심증(사건의 실체에 대한 판단)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법은 그 판단에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지 않다면 다툼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판단을 하였다면 그것에 구속되어야 하지, 그 판단에 대해 다투려고 하면 정말로 한도 끝도 없습니다. 보통 증거로 제출되는 것들을 다 조사할 수도 없고 다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일일히 다 조사하라고 한다면 또 다시 조사하라고 요구하고 다시 판단하라고 요구하고.. 그러다 보면 수 십년이 지나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게 됩니다. 때문에 법에서는 '합리적일 것'을 조건으로 하여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안에서 재판부의 판단이 명백히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쉽사리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트랙백을 했던 글에서 보면 재판부의 판단이 명백히 자의적(그러니까 자기 멋대로 하였다)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반면 몇몇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 또한 누군가의 시선에서 쓰여진 글일 뿐입니다. 설사 속기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순간이고, 또한 편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뿐더러, 원래 글쓴이는 김명호의 입장에 서 있던 분입니다. 그 분이 올렸던 지난 공판기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
이러한, 재판부의 판단이 합리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여론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1) 우선, 이것은 앞에서 얘기드렸던 자유심증주의에 대한 부당한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재판에 있어서 여론은 배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재판은 아직 판결이 확정(판결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상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을 의미합니다)되지 않았습니다. 확정된 재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모두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재판에 여론이 개입하게 되면 판사가 소신있게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치적 여론도 마찬가지이고, 사회적 여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 사법부는 여론을 반영하는 도구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2) 여론이 반드시 정확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론이라는 것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고 전체의 생각을 반영할 수도 없습니다. 조작될 수도 있고,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에 관한 여론이 반드시 정당한 여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ㄱ. 애초에 김명호는 성대 입시문제 오류로 재판을 받았던 적이 있고, 그에 대해 자신이 사법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1인 시위도 하셨다고 하는군요. 그 사건과, 김명호가 석궁을 들고 그 재판을 맡았던 판사에게 간 것은 엄격하게 따로 떼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후자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누가 날 때리면, 그 후에 내가 그를 때리는 것이 정당화되나요? 저것은 정당한 방위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생각하건대, 석궁은 분명히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임에 틀림이 없고, 저것을 들고 찾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협박죄가 될 수 있으며,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인정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얘기는 너무 기니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ㄴ. 그런데 김명호 측은, 이 사건에서도 사법피해자의 이미지를 주장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제가 원 글을 쓴 취지도 그것 때문이겠지요. 아까도 말했듯이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실제로 윗선에서 압력이 있었는지, 판사가 바뀐 것이 그것 때문인지, 그것 때문에 피고인 측의 신청을 기각한 것인지, 그것은 김명호 측의 시선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측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3) 그렇다면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 사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대법원에 피고인 측이 상고하였다 하니 그 판단을 지켜보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대법관들에게 압력이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항소심에서 신태길 재판장이 피고인의 몇몇 증거신청을 기각한 것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안에 있는 것으로서 정당한지 아니면 그 원칙을 어긴 것으로서 부당한지, 대법원의 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여론이 개입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 판단이 부당했다면, 다시 항소심으로 재판이 내려올 것이고 그렇다면 김명호가 무죄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제가 저번 글에 썼던 생각도 타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될 수도 있고요.
4) 혹자는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까지 여론을 배제하라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것이 예외적으로 일방적으로 김명호가 희생당하는 경우인지 아닌지도 확정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데어서도 다툼이 있다면, 역시 다툼은 끝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사건마다 여론의 개입이 허용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하지만, 예외는 예외이고 그만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4. 맺으며
법을 적용하는 법관은 못미더울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진 사람이 재판이 공정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왠지 판사가 나에게만 불리하게 판단한 것 같잖아요. 축구 경기 할 때도 진 팀에서 심판 탓을 하듯이 말입니다. 하물며 나름대로 정확한 계측장치를 갖추고 있는 스포츠에서도 그러한데, 오직 당사자가 낸 증거만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재판에서 판사의 판단에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너네는 못 믿겠어!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배심제나 참심제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꽤나 어렵습니다. 법을 전공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분야가 많습니다. 이건 용어가 어려워서의 문제일 뿐만은 아닙니다. 한 사안을 놓고 판단함에 있어서 수많은 사정을 일일히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판단의 순서도 있고 엄격히 지켜야 할 절차도 있고요. 어겨도 별 문제 없는 조항도 있지만 어기면 안 되는 조항도 있습니다. 배심재판을 한다면 이것을 배심원들에게 일일히 설명하여야 하겠지만(지금 시행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순 한글로 되어있는 민사소송법전도, 그것만 봐서는 대체 어떻게 재판을 할지 알 수 없는 것을 보면..
판사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뿐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할까요? 판결문 하나를 쓰는데 보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판사로 계시다 오신 교수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것을 고려하고 판단하고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 적용조문은 민법 제750조 하나이지만, 그 조문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해석을 위해서 교과서는 200페이지 가량이 쓰입니다. 그만큼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법이란 것이 복잡하고 쓸데없는 것이고, 법의 어려운 용어들은 다 잘못된 것입니까? 또 막상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법이 때로 잘못 쓰인다고 하여 그 법을 없애자, 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어려운 용어들을 쉽게 풀어 쓰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실제로 요즘 만들어지는 법들은 일단 한자를 없애고 한글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쓰이는 용어들 자체는, 쉽게 풀어쓰려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편의상 개념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예컨대 '고의'라는 단어를 풀어 쓰면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어떠한 사실이 일어나리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발생하게 하고 싶어하는 범인의 마음 속 생각'이 되는데 일일히 그러한 말을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저도 법을 공부하고 있다 보니 법조계에 옹호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사법부가 대놓고 막장은 아니라는 것, 꾸준히 자정과 정화가 이루어져 왔고, 지금은 어느 정도 틀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나아갈 길은 많이 남아 있겠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판단은 존중될 수 있을 정도에는 이르렀다고 봅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은 지라 앞으로는 거의 로그인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의 답변은 달지 않을 것입니다.